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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19일 목요일

도동서원 (Dodongseowon Confucian Academy, KOREA)

도동서원[道東書院]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http://www.tournuri.com


달성군이 지금은 대구광역시 행정구역 안에 편입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지만 한적한 도동서원을 찾아보면 그 경치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도동서원은 한휠당 김굉필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대구 달성군 현풍에서 낙동강을 끼고 4Km정도를 달리면 닿을수 있는 곳인데 대중교통은 하루에 몇편이고 자가용이나 택시를 이용해야하는 불편함이 있긴 하지만 꼭 한번 찾아가 볼만한 명소가 아닐수 없다.
 
현재 낙동강을 굽어보는 위치에 자리잡은 도동서원은 원래 선조1년 현풍 비슬산 기슭 쌍계동에 세워졌다가 1597년 정유재란때 소실되어 선조38년 지금 자리로 이전하였다 한다. 당시이름은 보로동서원이였고 1607년 도동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동방도학지종'이라고 칭송했는데, '도동'으로 사액한 것도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의 주인인 김굉필은 김종직의 제자로 학문을 배우면서 소학에 심취해 소학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한다. 1480년 성조11년 초시에 합격하여 관료생활을 시작했고 1498년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를 갔다. 이곳에서 조광조를 만나 학문을 전수하였고 1504년 연산군10년 갑자사화때 유배지에서 처형되었다. 이후 중종반정으로 신원되어 도승지가 추증되었고 우의정 추증을 거쳐 1610년 광해군2년 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등과 함께 5현으로 문묘에 배향되어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한 인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도동서원은 전형적인 서원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장 높은곳에 신위를 모시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고 사당의 내삼문 아래 좌우로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강학공간인 강당 아래쪽으로 서원의 현관에 해당하는 누각 수월루가 위치하고 있다. 수월루 앞쪽으로는 너른 마당과 홍살문이 세워져 있으며 동재 옆쪽으로는 서원을 관리하는 작은 살림집이 한 채 붙어 있는데 살림집 대문이 서원의 담벼락과 하나로 이어져 있다.
 
여긴 원래 이렇게 조용한 곳일까? 평일이라 이렇게 아무도 없는것일까?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두시간 동안 서원 곳곳을 배회하는데 단 한명의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동재옆 살림집에도 세간 흔적만 있을뿐 사람은 아무도 없는듯했다.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도동서원을 둘러보며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아니어서 여는 관광지처럼 매표소에서 표를 사야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거창한 볼거리가 있는것도 아니지만 낙동강이 굽어 보이는 도동서원 앞마당에 올라서니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유학을 국시로 했던 조선시대 대학자를 어떻게 추모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서원 곳곳을 모두 둘러보고 내려와 달성으로 나가는 버스시간을 확인해보니 다행히 얼마지나지 않아 버스한대가 지나가는 것을 확인하고 이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멀찌 감치 떨어져 낮은 언덕을 등에 지고 자리잡은 도동서원 전경을 구경하려니 마치 신선이 된 듯 꿈속에 있는듯 여러 가지 잡생각이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졌다. 몇몇 서원들을 여러차례 둘러보았으나 도동서원 역시 손에 꼽히는 명당이다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도동서원

도동서원 수월루






















































경주향교 (Gyeongju hyanggyo, KOREA)

경주향교[慶州鄕校]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향교는 서원과 달리 지방의 중등교육기관으로 지방 백성을 교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공교육기관이다. 경주향교는 경주시 남쪽 교동마을 안에 자리잡고 있다. 경주의 주요관광지중 하나인 교동마을은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이지만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에 전주의 한옥마을처럼 전통마을로 개발되면서 경주의 주요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고 있는 곳이다.
 
경주를 수십번도 더 와 보았지만 교동마을 안쪽에 향교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얼마되지 않았다. 전국의 주요 서원가 향교를 찾아다니가 조선시대 사교육기관이였던 유명한 서원들에 대한 자료는 많은 반면 조선시대 공교육기간이였던 향교에 대한 자료가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을 발견하고 작심하고 자료를 조사한적이 있었다.
 
그때 현존하는 주요 향교들 목록에 경주향교의 이름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 왔고 그 위치도 한번은 스쳤을 법한 경주시내 한가운데인 것을 알고 몇 해전 일부러 찾았지만 애석하게도 공사중이라 출입금지 그리고 다시 몇해가 지나 경주향교를 볼 요량으로 근방을 지나는 길에 일부러 경주에 들어 어렵게 처음 찾아와 보았다.
 
현재 경주향교 자리는 신라 신문왕 2682년 국학이 설치되었던 유서깊은 장소라고 한다. 이후 조선 성종231492년 경주부윤 최응현이 중수하고 임진왜란때 대성전이 소실되었다가 선조221600년 경주부윤 이시발이 대성전을 중건하고 광해군61614년 경주부윤 이안눌이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현재는 대성전과 명륜당,동무,서무,전사청,내신문등이 남아 있고 특히 대성전은 정면3칸 측면3칸의 맞배지붕 양식으로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향교가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등을 지급받고 교관이 교생을 가르치는 교육기관 역할을 수행하였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고 전교1명과 장의 몇 명이 운영을 담당 봄가을로 제사만 이루어지고 있다.
 
교동마을은 경주시내에 있어 택시나 시내버스로 쉽게 이동할 수 있고 교동마을 주차장에서 잘 정돈된 마을을 가로질러 1km정도를 걸어들어가면 특이하게 하얀색 회벽으로 마감된 경주향교 담벼락을 만나게된다. 담벼락을 돌아 경주향고 안으로 들어서면 담벼락 바깥쪽의 시끄러운 마을분위기와는 사뭇다른 분위가 연출된다.
 
학교라고 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좀더 엄숙하고 종교시설이라기 하기에는 좀 가벼운듯한 분위기가 향교의 역사적 역할과 특성을 잘 설명해주는 듯하다. 여러 지역의 향교를 찾아다녀 보면 지역마다 위치마다 그 지역의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기 마련인데 경주향교는 교동마을 한가운데의 작은 않은 면적의 너른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교동마을 구경을 왔다가 한번씩 스쳐지나 가는곳이 되어 버린 경주향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관광지가 되어 버린 교동마을의 경주향교에 대해, 역사적 배경과 의미를 잘 이해하고 우리의 훌륭한 문화유산을 좀더 아끼고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경주향교 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