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T.053-984-4550
대구시내 팔공산에는 유독 절집이 많다. 근대에 들어 이 나라를 통치하는 기득권 계층이 대부분 이지역 출신이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유독 팔공산에 위치한 절집들은 풍요로워 보인다. 아무 사찰이나 찾아 다니는건 아니지만 파계사는 두 번의 인연이 있는 절집이다. 언제인지 모르지만 대구에 볼일이 있어 왔다가 파계라는 사찰명칭이 특이하여 새벽 안개를 무릅쓰고 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10여년지나 다시 한번 찾았는데 이날도 비가 내려 파계사 분위기는 영락없이 신선의 세계 그 자체였다.
804년 신라 애장왕 5년 심지가 창건하고 1605년 선조 38년 계관이 중창하고 1695년 숙종 21년 현응이 또 한차례 중건을 했다는 파계사는 영조의 출생과 관계가 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숙종의 부탁을 받은 현응이 이곳에서 백일기도롤 올렸는데 이후 숙빈 최씨가 수태를 하였고 이때 태어난 아들이 훗날 영조가 되었다 한다. 이에 숙종이 보답으로 사찰 40리 이내의 조세를 파계사에 내렸으나 현응이 이를 거절하고 선대의 위패를 모시기를 청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1979년 파계사의 관음보살상을 개금했는데 이때 영조의 어의가 발견되어 설화의 신빙성을 더해 주기도 했다. 경내에는 사찰입구에 해당하는 2층 누각 진동루와 주 불전인 원통전 적묵당등이 남아 있다. 특이하게도 진동루 계단을 지나 경내에 들어서니 바닥이 대리석으로 덮여있다. 생판 처음 보는 풍경이다. 이곳도 부유함이 넘치는 듯 하다. 파계사는 대구광역시 시계 안에 있는 사찰이다.
그래서 수시로 버스가 다니고 사찰 입구에는 대규모 상업시설이 들어서 있는데 어지간한 음식점은 죄다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이곳에 또 하나의 역사적 사실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두 번째 방문때서야 확인 할 수 있었다. 파계사 입구 마을이 한국근대사에 피바람을 몰고온 10.12 군사혁명과 광주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주역 노태우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참 아리러니 하다.
조선 중기 탕평책으로 당쟁을 없애고 장수하면서 손자 정조를 왕위에 올린 위대한 군주의 탄생설화가 파계사에 남아 있는데 아랫마을에서는 한국 근대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10.12 군사혁명과 광주민주화 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주역이 태어 났다는게 아리러니가 아닐 수 없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역사의 평가는 좀 더 객관적이 되겠지만 암울한 시기를 어린나이에 경험하고 성인이 되어 실체를 인지한 내게도 잠깐이나마 잘 어울리지 않는 두 인물을 생각하게 한 시간이였다.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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