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한 유교사회였던 조선시대 역사를 500년이나 간직한 우리나라에는 남녀의 러브스토리를 담은 문화유적이 드물다. 전라북도 남원시 한가운데 위치한 광한루원은 성춘향과 이몽룡의 러브스토리를 간직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문화유적이다. 보물 제281호로 지정된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 팔작지붕 목조건축물로 조선 초기 재상 황희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누각으로 임진왜란때 전소되고 현재 건물은 1638년 인조 16년 재건한 건물로 이후에 정조때 다시 한번 증축 한 것이다. 명승 제33호 광한루원에는 광한루를 비롯하여 광한루 앞 연못, 오작교, 방장정, 영주각등이 어울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처음 지었을 때 광통루라 불렀던 광한루는 이익공형식의 공포를 가진 누각으로 익공사이에 화반을 배치학고 후면중앙에 누마루에 오르는 계산을 배치한 형식을 갖고 있는 목조건축물이다. 규모도 제법커서 멀리서 보면 웅장하고 장중한 느낌이다. 광한루 누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돌리고 기둥사이에 복합문을 달수 있도록 설계하고 여름에는 개방하고 겨울에는 문을 달아 사용 할수 있도록 만들었다. 광한루 본 건물 양쪽에는 2칸의 부속건물이 있고 그 둘레에는 툇마루를 돌려 난간을 세웠고 부속건물 내부는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남원은 지리산 북쪽에 위치한 고을이다. 예로부터 많은 사람이 살아 이 지역에서는 비교적 큰 고을 이였고 때문에 오랫동안 지역의 중심지로 발전 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전라도 구례를 점령하고 북상 남원성을 공격한다. 남원성을 지키고 있던 명군 3,000명과 조선군4,000명은 왜군 6만명과 전투가 벌어져 치열한 공성전이 펼쳤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명군장수는 수하들을 데리고 도주하고 전라병사 이복남 이하 조선군 대부분이 장렬하게 전사한다. 이후 왜군은 남원성을 함락하고 전주성까지 공격 호남일대를 장악하게 된다.
참혹한 남원성 전투의 역사와는 상반되는 광한루의 아름다운 러브스토리가 공존하는 남원은 지금도 지역의 중심도시로 활력이 넘쳐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전주와 여수순천을 있는 철도가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고 최근에는 주변에 영호남을 있는 88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교통의 요지로 발전한 남원 시내에는 오밀조밀하게 세워진 많은 건물들과 오가는 사람도 많아 보인다.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광한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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