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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31일 토요일

수덕사 (Sudeoksa Temple, KOREA)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19  T.041-330-7700

부석사 무량수전, 봉정사 극락전과 더불어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 건출물로 손에 꼽히는 수덕사 대웅전 어떤 문화재 전문가는 수덕사에 이 대웅전이 있어 수덕사를 찾는 길이 행복하다 하였다고 쓰기도 하였다. 실제 수덕사를 찾아 대웅전 앞에서면 정말 웅장한 느낌이 든다. 몇백년이 지난 현재에도 이런 느낌인데 이 건물을 만들 당시 대웅전의 맞배지붕이 얼마나 거대하고 웅장하게 느껴졌을까
수덕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숭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정확한 기록이 없어 언제 창건되었는지 의견이 분분하기는 하지만 백제의 문헌에 나오는 12개 사찰 중 현존하는 유일한 사찰인 것으로 미루어 백제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경내에서 출토되는 백제 와당등 여러 가지 출토 유물로 미루어 보아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 재위시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해안에 가까운 탓에 이 일대는 여행을 해 보면 높은 산이 별로 없고 대부분의 지형이 나즈마한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런 곳에 그리 유명한 사찰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져 든다. 그런데 막상 예산 삽교를 지나 덕숭산 아래쪽에 당도하면 제법 산다운 산이 시야에 들어오고 계곡 초입에 당도해서 상업지구의 여러 시설물들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여느 명산고찰과 다름이 없는 모습으로 변해버리는 주변을 발견 할 수 있다.
 
사실 수덕사는 대웅전을 제외하면 별로 볼것이 없는 사찰이다. 최근에 많은 돈을 들여 만들어 놓은 여러 시설물들은 그저 시선을 어지럽힐뿐 이 곳을 찾는 이에게는 그리 탐탐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런 거치장스러운 시설물들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에 오르면 정면으로 대웅전이 시야에 들어오고 순간 거추장스러운 잡생각이 싹 가시는거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수덕사 대웅전은 부석사 무량수전 처럼 아름다운 곡선이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은 전혀 없는 무뚝뚝한 목조건축물이다. 그런데 그 굵직한 선과 묶직함은 직선들이 남성미를 물씬 풍기는 듯하여 감탄을 자아 내기에 충분하다. 대웅전은 1940년 중수 당시 대들보에서 나온 묵서명을 통해 고려 충렬왕 34(1308)에 건립된 건물로 밝혀 졌으며 겹치마 맛배지붕에 주심포 형식을 가진 정면3칸 측면4칸의 목조 건축물이다.
 
그렇게 사찰의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기웃기웃하다 보면 이 절집의 위치가 참으로 절묘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어느 절집이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수덕사 역시 절경을 자랑한다. 대웅전 뒤편으로는 덕숭산이 병품 처럼 쳐있고 앞으로는 시원하게 떠져 예안 평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중의 절경이다. 과거에 이런 사찰을 창건한 고승들은 한결같이 이런 풍수를 골라 잡을수 있는 식견과 학식을 겸비한 전문가 들였나 하는 생각이 절도 날정도로 멎진 자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수덕사를 애기하면 꼭 빠지지 않은 애기가 하나 더 있다. 수덕사 경내를 빠져나오다 보면 지금은 새길이 나있지만 옛길 초입에 위치한 수덕여관과 그에 얽힌 예술가 몇몇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주인공들은 한국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였던 라혜석과 비구니 스님 김일엽 그리고 몇 해전 타계한 고암 이응로 화백이다.
 
특히 라혜석은 여류시인이자 한국최초의 여류 서양화가로 당시 동경유학까지 다녀온 보기 드문 재원이였으나 1934년 이혼 후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출가를 위해 수덕사를 찾았다가 당시 수덕사 조실 만공스님으로부터 거절 당한 후 한동안 수덕여관에 머무르며 예술인과 교류하고 집필 활동을 했던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렇게 몇 년간 수덕여관에 머물던 라혜석은 흔적없이 사라졌다가 몇 년후 객사함으로서 그 파란만장했던 삶을 마무리하게 된다.
 
이 시기에 라혜석보다 젊은 고암 이응로가 수덕사를 찾아 라혜석과 교류하게 되었고 이런 인연으로 고암은 라혜석이 떠난 수덕여관을 매입하여 본 부인 박귀히 여사에게 운영을 맡겼고 파리유학과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른뒤 말년에 수덕여관에 내려와 기거하며 1988년 작고 할때까지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했던 곳이다. 몇백년을 아무 말없이 버터온 수덕사 대웅전 아래 자리한 수덕여관과 그에 얽혀있는 이야기들은 들으며 또 한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된다.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법주사 (Beopjusa Temple, KOREA)

법주사[法住寺]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209  T.043-543-3615
http://www.tournuri.com

충청북도에는 이렇다 할 고찰이 없는 거 같다. 그런데 충청북도 보은의 속리산 법주사를 가보면 그런 편견이 한번에 사라진다. 한국에 남아 있는 천년 고찰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법주사 역시 가람배치부터 남달랐다. 국립공원 속리산 등산로를 따라 계곡을 걷다보면 계곡사이에 생각보다 넓은 평지가 나타나고 계곡 사이의 너른 평지를 공간으로 가람을 배치하였다. 특히 법주사뒤편으로 펼쳐지는 속리산의 풍경이 압도적이다.
 
신라 진흥왕 14553년 의신스님이 창건하고 776년 진표, 영신스님이 중창하였으며 고려왕조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듭했고 조선중기에 이르러서는 60여동의 전각과 70여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사찰로 발전하였다. 임진왜란때 대부분 소실되었다가 인조21624년 벽암스님에 의해 다시 중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사찰이다. 법주사 경내에서 첫 번째 느낌은 장쾌하고 웅장한 하다는 느낌 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법주사 일주문을 지나 첫 번째로 마주하는 풍광이 속리산을 병풍삼아 자리 잡은 팔상전과 청동미륵대불이다. 마치 속리산 풍경을 빌려 온듯한 분위기다. 그리고 청동미륵대불과 팔상전을 지나 마주한 대웅전의 규모 또한 예사 절집에서 보기 어려운 규모의 정면7, 측면4칸의 2층 팔작지붕의 목조건축물 이다. 우리나라 절집 중에 2층 구조의 전각은 총 4곳으로 마곡사 대웅전,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 금산사 미륵전 정도로 만들어진지 400여년 된 법주사 대웅전이 그 중 하나이다.
 
속리산 산중의 너른 평지에 산봉우리들을 병풍삼아 배치된 웅장하고 아름다운 여러 전각들의 모습이 이런 첫인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또한 경내에는 대가람답게 아직도 귀중한 문화재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데 특히 법주사 팔상전은 국보 제55호로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임진왜란 이후 다시 지어져 1968년 해체 수리된 아주 중요한 목조건축물이다. 건물의 양식은 층마다 조금 다른데 1층부터 4층까지는 주심포양식으로 5층은 다포양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법주사 팔상전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 우리나라 목탑중에 가장 높은 목조건축물이며 하나뿐인 목조탑이라는 점에서 정말 중요한 문화재가 아닌가 싶다. 언제인가 통일신라시대 대가람 황룡사 9층목탑에 대한 TV다큐맨타리 프로그램에서 몽고침입으로 불타버린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을 유추할 자료가 법주사 팔상전이라는 내용을 본거 같다. 그러하기에 더욱 가치가 있는 한국건축사의 문화원형으로서 아주 소중한 문화재가 법주사 팔상전이다.
 
이외에도 법주사 경내에는 다양한 목조, 석조문화재들이 산재하여 있다. 팔상전과 대웅전 사이에 작은 규모지만 소박하게 자리 잡은 원통보전 역시 보물급 문화재로 대웅전과 같은 시기인 인조2년 벽암이 법주사를 중창할 때 만들어진 목조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많은 절집들은 유교국가였던 조선왕조를 거치면서 모두 첩첩산중으로 옴겨 가야만 했다. 이런 절집들에 비하면 법주사는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교통편도 좋은 편에 속하는 사찰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이 찾기에도 편리하고 우리 문화의 다양성과 우수성을 경험해 볼 수 있는 좋은 여행지가 아닐까 한다.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