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 216번지 T.054-436-6174 / F.054-436-6013
직지사에 잘 모르는 분들은 직지심경과 무슨 관련이 있는 사찰인가 이렇게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경상북도 김천 황악산 직지사는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 직지심경과는 관련이 없는 사찰이다. 하지만 직지사는 선종의 가르침에 따라 신라 눌지왕 2년 418년 아도화상에 의해 만들어져 신라시대 2차례의 중수를 거쳤으며 조선시대 제2대 정종의 어태를 봉안함으로써 유교국가 조선시대에도 줄곧 사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중기에는 사명대사 출가하여 신목대사의 제자가 되고 30세 나이에 직지사 주지가 된 것으로 유명한 사찰이다.
우리들은 대장경이라고 하면 해인사 장경각에 보관되어 있는 고려대장경만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휠씬 이전인 신라시대에 금자대장경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직지사 사적기에 담겨 있다. 금자대장경이 현존하지 않기에 그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으나 후삼국의 격변기에 고려 태조 왕건은 직지사의 고승 능여 조사의 도움으로 후백제와의 불리한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고 하여 고려 건국과 더불어 직지사는 국가적인 비호를 받게 된다. 이 때문에 신라의 금자대장경이 직지사에 봉안되었고 그 기록이 직지사에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볼 수 있다.
직지사의 가람 배치는 고창 선운사와 언양 통도사처럼 수평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주전각인 대웅전과 비로전이 수평으로 배치된 구조로 일주문을 통과하면 대항문 금강문 사천왕문이 차례로 자리를 잡고 있는데 동선이 곡선으로 되어있어 이 동선을 따라 걷다보면 대웅전 앞에 서게 된다. 경내에 들어서면 오른편 구릉으로 주요전각들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현재 직지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인 대웅전은 영조 11년 1735년 중건된 건축물로 건물내의 후불탱화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직지사를 처음 찾은 것은 막 봄을 지나 초여름에 접어들 무렵 이였는데 그리 깊은 산중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이 아니었음에도 아주 울창한 숲속에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로로 배치된 전각들과 함께 주요전각들 전면에 나지막한 담장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조성된 정원의 모습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거 같다. 그리고 비로전에서 부터 흐르는 작은 물줄기를 수로로 만들어 경내를 흐르게 만들었는데 이게 사람의 마을 참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소박한 물줄기 였지만 자칫 밋밋하게 느낄 법한 경내의 너른 평지를 짜임새 있게 나누어 주고 합쳐주는 것 같아 참 인상적이다. 한때 현재의 김천 법원에서부터 멀리 상주 우시장 인근까지 사찰의 사유지로 거느린 대가람 이였던 직지사는 일제 때 사찰령에 따라 잠시 해인사의 말사가 되기도 했으나 다시 그 사세를 회복하여 지금은 전국 25개 본산의 제8교구 본사로 사찰 경내 면적만 30,000평, 보유산림만 600정보에 이를 정도로 부유한 절집중 하나이다.
그래서 일까 직지사 주요전각들의 기와와 색체, 단청의 화려함이 유난히 눈에 띠었으며 최근에 현대적으로 지어진 성보박물관, 설법전, 만덕전등 규모있는 전각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자칫 눈에 거슬릴 수 있었던 현대적 전각들은 다행히 직지사 원래 모습을 그리 크게 다치지 않은 거 같다. 그렇기에 직지사는 오래된 한국의 고건축에 매료되어 고 건축물만 찾아 다니는 내게도 언제든 기회만 된다면 다시 찾고 싶은 절집이다.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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