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T.054-742-9922 / F.054-771-9850
http://www.tournuri.com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T.054-742-9922 / F.054-771-9850
경주시내에서 보문관광단지를 가다 보면 오른쪽 길가에 이상하게 생긴 문화유적 하나가 남아 있다. 그 뒤로 넓게 펼쳐진 나대지는 황룡사지이고 황룡사지 끄트머리쯤 되는 지점에 매표소가 보이고 덩그러니 남겨진 숲속에 국보 제30호 분황사 모전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643년 신라 선덕여왕 3년 분황사 창건 당시 세워진 후 여러번 보수되어 현재는 탑신의 3층까지만 남아 있는 분황사 모전석탑은 흙으로 벽돌을 굽고 이걸 쌓아 올린 형식의 석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런 형태의 모전석탑이 몇 점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경주시내 관광 코스중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기도 하다.
경주시내에서 보문관광단지를 가다 보면 오른쪽 길가에 이상하게 생긴 문화유적 하나가 남아 있다. 그 뒤로 넓게 펼쳐진 나대지는 황룡사지이고 황룡사지 끄트머리쯤 되는 지점에 매표소가 보이고 덩그러니 남겨진 숲속에 국보 제30호 분황사 모전석탑이 자리 잡고 있다. 643년 신라 선덕여왕 3년 분황사 창건 당시 세워진 후 여러번 보수되어 현재는 탑신의 3층까지만 남아 있는 분황사 모전석탑은 흙으로 벽돌을 굽고 이걸 쌓아 올린 형식의 석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런 형태의 모전석탑이 몇 점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경주시내 관광 코스중 빠지지 않고 찾는 곳이기도 하다.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고려의 숙종은 원효대사를 기리기 위해 ‘대성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분황사에 비석을 세웠는데 이후 잊혀졋다가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가 금석학을 연구하면서 이곳들러 비문을 발굴하고 ‘사신라화쟁국사비적’이라 새겨놓았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하나의 문화유적에 시대별로 여러 인물의 흔적이 남겨졌다. 구석구석 둘러보고 나오려는데 문득 분황사 안내 표지판이 눈에 띠었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처음부터 읽어보았다.
분황사의 뜻이 향기가나는 향제라는 뜻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니 이 사찰을 건립한 선덕여왕을 지칭하는 단어인 듯 했다. 그럼 분황사는 향기가 나는 황제 즉 선덕여왕의 사찰인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당태종이 선덕여왕에게 모란 꽂을 선물로 보내면서 그림에 벌과 나비를 그리지 않은 것을 두고 당나라가 신라를 업신여긴 나머지 선덕여왕에게 이런 그림을 선물로 보냈다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분황사 건립은 이런 당나라 황제에 맞선 선덕여왕의 지혜로운 선택이였을 것이다. 이런 연유 때문인지 분황사 모전석탑의 분위기에서 향기가 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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