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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6일 금요일

용주사 (Yongjusa Temple, KOREA)

용주사[龍珠]
경기도 화성시 용주로 136  T.031-234-0040

경기도 수원시는 조선 후기 정조대왕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도시이다. 근런데 정조가 수원화성을 건축하게 된 계기가 바로 용주사 주변에 있는 융건륭 때문이다. 융건릉은 정조와 그의 아버지 사도사제의 왕릉으로 정조가 즉위한 후 길지를 골라 사도세자의 묘를 이전한 곳으로 훗날 자신도 아버지 사도세자의 옆에 뭍히게 된다. 용주사는 854년 신라 문성왕 16년에 갈양사로 창건하고 952년 고려 광종3년 전쟁으로 전소되었다가 조선 22대왕 정조가 이곳으로 융건릉을 이전하고 1790년 갈양사 자리에 융건릉의 능사로서 용주사를 복원하였다.
 
이후 145칸이나 되는 큰 절로 성장한 용주사는 일제강점기에 31본산의 하나였으며 정조의 명으로 중건 당시 최고의 화원 이였던 김홍도가 머물르며 감독한 대웅전 석가삼존불 후불탱화가 남아 있다. 김홍도의 그림이라는 증거는 없으나 그가 감독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다. 이밖에도 당시에 조성했다는 국보 제120호 동종이 보존되어 있고 대웅전의 현판은 정조의 친필이다. 또한 천연기념물 제264년 회양나무는 수령이 200년 된 것으로 중건 당시 정조가 심었다고 한다.
 
대웅보전은 다포계 팔작지붕 목조건축물로 정면3, 측면3칸의 규모인데 왕명으로 다시 지은 건물답게 웅장하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 앞마당에 들어서면 또 하나 특이한 구조를 발견하게 되는데 보통 대웅전 정면으로 탑이 놓여할 자리에 인근 융건릉을 참도 하는 것만 같은 길이 똑바로 놓여있다. 다른 절집에서 보기 드문 구조이다. 또한 여러 전각들이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 대칭 비대칭 구조를 조화롭게 사용했는데 한국건축의 특징을 잘 말해주는 특징이다.
 
용주사는 어린 시절 정치적 희생양으로 죽임을 당한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그리움과 효심이 그대로 남아있는 사찰이다. 용주사 바로 옆에 자리한 융건릉도 그런 그의 마음을 담고 있다. 왕위에 오른 후 길지 수소문하다가 마침내 찾게된 길지에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자신도 사후에 아버지 사도세자의 옆에 뭍혔다. 수원화성을 가보면 정조의 원대한 꿈이 보이는듯한데 이곳 용주사에 와보면 정조대왕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효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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