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양향리
경북 영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낯설은 이름의 서원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경북영천에서 약 6km정도 벚어나면 지방도변에 위치한 임고서원은 그리 접근하기 어렵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곳에 배향되어 있는 인물을 애기하면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분을 배향해 놓은 서원이다. 임고서원은 충절하면 떠오는 고려말 대학자 포은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고 그를 기리는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포은 정몽주는 고려 공민왕 9년 1360년에 과거에 급제 최고의 관료가 되어 고려의 마지막을 함께한 대 유학자이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유명한 일화는 1392년 고려의 수도 개경 선죽교에서 조선 태종 이방원에게 척살당한 사건이다. 이때 주고 받았다는 시조 단심가는 후세에 널리 전해져 오늘날도 충절을 대표하는 명문이 되었다.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포은 정몽주는 조선건국을 반대한 역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은 정몽주는 유학을 국시로한 조선에서 무시할수 없는 대 유학자 였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세월이 지나 조선 명종8년 1553년 그의 고향인 영천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 자락에 임고서원을 세워 그의 위패를 봉안하게 되었다.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선조36년 1603년 다시 중건하여 사액서원이 되었다.
임고서원은 영천시 부래산 자락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다. 서원 앞에는 최근에 지방자치단체가 잘 정비해 놓은 연못과 커다란 안내판이 조성되어 있고 계단을 몇 개 올라 서원 정문을 누각을 통과하면 계단 위쪽으로 임고서원 현판이 걸려 있는 강당이 나타난다. 강당 뒤편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포은 정몽주의 위패를 모셔놓은 사당이 위치한다.
서원의 끄트머리 사당 계단을 모두 오르면 강당의 기와지붕 너머로 너른 평원이 펼쳐진다. 늦가을 자락이라 추수가 모두 끝난 논에는 탈곡을 하고 남은 볏짚들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고 더 멀리에 아득하게 산자락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고 이 모든 것들이 하나의 그림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이 곳도 역시 포은 정몽주의 위패를 모실만한 곳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서원을 모두 구경하고 나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문득 어떤 여행자가 가을 노란색 은행나무 낙엽이 가득한 임고서원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놓은 것을 본기억이 났다. 같은 계절이기는 하지만 늦은 가을, 겨울의 초입에 찾은 임고서원의 은행나무 낙엽은 구경할수는 없었지만 포은 정몽주 이름 석자만으로도 사계절 내내 어느 때고 한번쯤은 꼭 찾을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 아닌가 한다.
돌아가는 길에 영천시내에서 가까워 터미널에서 택시를 다고 임고서원을 오는동안 택시기사님이 일본에서도 포은 정몽주를 연구하기위해 이곳을 찾아온다고 귀뜸해주었던 애기가 떠올랐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대유학자로서의 학문적 업적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지만 민주주의라는 간판아래 정치인들이 4년마다 치루어지는 선거를 앞두고 이합집산하는 우리 정치의 세태를 바라보면 초지일관 목숨을 걸고 고려에 충성을 다한 포은 정몽주의 정신이 어떤것이였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임고서원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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