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우당[綠雨堂]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해남은 우리땅의 끝부분에 있는 꽤나 외진 곳이다. 그런데 이 땅에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문인 고산 윤선도가 태어나고 자랐다. 고산 윤선도는 우암 송시열과 같은 시대 사람으로 송시열에게 정치적으로 밀려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한 시인이도 했다. 그가 남긴 시조 75수는 국문학사상 최고의 시조로 평가 받고 있으며 이외에도 여러편의 작품을 남긴 당대 최고의 문인이였다. 사적 제167호로 지정된 녹우당은 고산 윤선도의 고택이자 해남 윤씨의 종가이다. 해남읍에서 대흥사까지 이어진 지방도를 따라 2km정도를 내려가다 보면 연동마을이 나타나는데 이 마을 안쪽에 녹우당이 자리잡고 있다.
윤선도는 42세 되던 해 1628년 인조6년 봉림대군과 인평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훗날 효종으로 즉위하는 봉림대군은 어린 시절 자신의 스승이였던 윤선도를 위해 수원에 집을 지어준다. 1660년 효종이 승하하자 윤선도도 효종이 내려준 수원집의 일부를 뜯어 고향 해남으로 낙향하고 수원집을 옴겨짓는데 이게 현재 녹우당의 사랑채이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는 녹우당은 집 앞에 커다란 은행나무가 한그루 서있다. 그리고 집 뒷편으로는 500년 가량된 비자림으로 둘러 쌓고 있는데 이 또한 천연기념물 제241호로 지정되어 있다.
녹우당은 낮은 언덕이 쭉 이어지는 구릉의 끄트머리에 지어진 고택으로 주변에는 유채 꽃밭이 있어 봄이면 온통 노랑색으로 변해 버린다. 이 또한 장관이다. 녹우당 앞에서 바라보면 멀리 대흥사가는 길목까지 한눈에 들어 온다. 이런 풍경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윤선도가 왜 뛰어난 문인이였는지 이해가 되는 풍경이다. 이곳을 찾는 많은 관광객들을 위해 세워 놓은 고산 윤선도 전시관에는 그의 문집을 비롯하여 가문에서 보관하고 있던 많은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물중 윤선도의 증손 윤두서의 공재자화상은 당대의 걸작으로 국보 제240호에 지정된 보물이다.
우리땅 이곳 저곳에는 아직도 많은 고택들이 그 후손들에 의해 보존되고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고택들을 찾아 다녀보면 하나 같이 명당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녹우당 자리야 말로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명당 중에 명당이다. 윤선도는 말년에 낙향하여 고향집 녹우당과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땅끝마을 건너편 보길도에 세연정이라는 정사를 지어놓고 말년을 즐겼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보길도 세연정도 꼭 한번 둘러보고 싶다.
여행스케치 당간 syston@hotmail.com
해남 녹우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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